나는 원래 흔들리는 사람이다.
의심도 많고, 상처도 많고, 불안도 많다.
‘괜찮아지고 싶다’는 말은 몇 번이나 입안에서 돌다가 삼켜졌고,
‘나는 괜찮지 않다’는 말은 아직도 용기가 필요하다.
어릴 적부터 나는 늘 잘하려 애썼다.
좋은 사람이어야 하고, 좋은 엄마, 좋은 아내, 좋은 딸이어야 했다.
하지만 내 마음은 늘 복잡했다.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면서도 사람들이 무서웠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내가 나를 더 믿고 있었다.
나는 자주 무너진다.
겉으론 잘 버티는 사람처럼 보일지 몰라도,
실은 자주 부서지고 자주 외로워진다.
누군가의 말 한 마디에 움츠러들고, 누군가의 부재 앞에 울고,
내가 끊어낸 관계들 앞에서는 죄인처럼 숨고 싶어진다.
관계는 언제나 어려웠다.
사랑해서 가까이하면 상처를 받고,
멀어지면 또 미련이 남았다.
결국 나에게 남은 건 침묵과 거리였다.
그렇게 스스로 혼자를 택했다.
얼마 전, 내 삶의 중심을 뒤흔드는 깊은 상실을 겪었다.
때로는 그것이 내 삶의 모든 기준을 삼켜버릴 만큼 거대하게 다가오곤 한다.
내가 잘못한 걸까?
내가 충분히 지켜주지 못한 걸까?
그 질문 앞에 나는 하나님 앞에서도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나는 하루하루를 걷는 일이 너무 힘들었었다.
숨이 짧아지고, 생각은 멀리 흩어지고,
무기력이 나를 눌러 몸을 가누는 것도 버거워질 때가 많다.
나의 모든것들이 무너졌을 때, 나는 사람을 밀어냈다.
멀리 있는 사람도, 가까운 사람도, 심지어 나 자신조차도.
무너진 관계 속에서 나는 혼자가 되었고,
혼자라는 걸 숨기려고 더 웃었고,
더 잘하려고 했고, 그래서 더 힘들었다.
“너 때문이야.”
세상이 그렇게 말하는 것도 아닌데, 나는 스스로에게 매일 그렇게 속삭인다.
“네가 더 잘했어야 했어.”
“왜 그렇게밖에 못했어.”
이 말들이 내 안에 어두운 방처럼 자리 잡고 있다.
복음나눔 STEP 1을 시작하면서
나는 무엇을 기대했나..
그저 우리교회의 기준인 배우는 것에 참여하고
그리고 조금은 마음이 나아지기를 바랐다.
하지만 이 과정은..
나의 ‘상처’를 꺼내는 게 아니라,
나의 ‘죄’를 꺼내게 했다.
나는 하나님 없이 살아왔다.
사람을 붙잡았고, 감정에 휘둘렸고, 불안한 마음을 내 힘으로 조율하려 했다.
그 결과는 더 깊은 고립이었다. 겉으로는 잘 살아내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무너지고 있었다.
“그렇게 살지 않아도 돼.” 복음이 건넨 세미한 음성..
내 안의 짐을 알아주고 무조건적인 안아줌으로 말해주는 듯했다.
볻음은 단순한 교리가 아니었다. 지금 나 같은 사람을 위한 이야기였다.
무너지고, 실패하고, 숨조차 버거운 나를 위한 좋은소식이었다.
복음은 나를 고쳐주는 약이 아니었다.
복음은 나의 ‘호흡’이 되었다. 그게 없으면 나는 다시 죽음과 고립으로 갈 것 같다..
이제 나는 예수님을 닮으려 방향을 맞춰 한 걸음씩 걷고자 한다.
또 무너질 수 있다. 다시 우울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는 혼자가 아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걷고 계신다.
나는 살기로 했다.
내가 나를 무너뜨리는 방식을 멈추기로, 하나님께 다시 나아가기로.
아이를 향한 미안함도, 사람들에게 말하지 못했던 슬픔도 이제는 예수님의 손에 맡기기로 했다.
그 모든 것을 맡기고 하나님이 맡기신 내 자리를 묵묵히 감당하려 한다.
복음은
내가 다시 하루씩 걸을 수 있게 해주는 가장 따뜻한 길이다.
그 길 위에서 나는 다시 울고, 다시 고백하고, 다시 웃게 되는 훈련을 반복하며
예수님을 닮아 갈 것이다.
나는 원래 흔들리는 사람이다.
의심도 많고, 상처도 많고, 불안도 많다.
‘괜찮아지고 싶다’는 말은 몇 번이나 입안에서 돌다가 삼켜졌고,
‘나는 괜찮지 않다’는 말은 아직도 용기가 필요하다.
어릴 적부터 나는 늘 잘하려 애썼다.
좋은 사람이어야 하고, 좋은 엄마, 좋은 아내, 좋은 딸이어야 했다.
하지만 내 마음은 늘 복잡했다.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하면서도 사람들이 무서웠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내가 나를 더 믿고 있었다.
나는 자주 무너진다.
겉으론 잘 버티는 사람처럼 보일지 몰라도,
실은 자주 부서지고 자주 외로워진다.
누군가의 말 한 마디에 움츠러들고, 누군가의 부재 앞에 울고,
내가 끊어낸 관계들 앞에서는 죄인처럼 숨고 싶어진다.
관계는 언제나 어려웠다.
사랑해서 가까이하면 상처를 받고,
멀어지면 또 미련이 남았다.
결국 나에게 남은 건 침묵과 거리였다.
그렇게 스스로 혼자를 택했다.
얼마 전, 내 삶의 중심을 뒤흔드는 깊은 상실을 겪었다.
때로는 그것이 내 삶의 모든 기준을 삼켜버릴 만큼 거대하게 다가오곤 한다.
내가 잘못한 걸까?
내가 충분히 지켜주지 못한 걸까?
그 질문 앞에 나는 하나님 앞에서도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나는 하루하루를 걷는 일이 너무 힘들었었다.
숨이 짧아지고, 생각은 멀리 흩어지고,
무기력이 나를 눌러 몸을 가누는 것도 버거워질 때가 많다.
나의 모든것들이 무너졌을 때, 나는 사람을 밀어냈다.
멀리 있는 사람도, 가까운 사람도, 심지어 나 자신조차도.
무너진 관계 속에서 나는 혼자가 되었고,
혼자라는 걸 숨기려고 더 웃었고,
더 잘하려고 했고, 그래서 더 힘들었다.
“너 때문이야.”
세상이 그렇게 말하는 것도 아닌데, 나는 스스로에게 매일 그렇게 속삭인다.
“네가 더 잘했어야 했어.”
“왜 그렇게밖에 못했어.”
이 말들이 내 안에 어두운 방처럼 자리 잡고 있다.
복음나눔 STEP 1을 시작하면서
나는 무엇을 기대했나..
그저 우리교회의 기준인 배우는 것에 참여하고
그리고 조금은 마음이 나아지기를 바랐다.
하지만 이 과정은..
나의 ‘상처’를 꺼내는 게 아니라,
나의 ‘죄’를 꺼내게 했다.
나는 하나님 없이 살아왔다.
사람을 붙잡았고, 감정에 휘둘렸고, 불안한 마음을 내 힘으로 조율하려 했다.
그 결과는 더 깊은 고립이었다. 겉으로는 잘 살아내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무너지고 있었다.
“그렇게 살지 않아도 돼.” 복음이 건넨 세미한 음성..
내 안의 짐을 알아주고 무조건적인 안아줌으로 말해주는 듯했다.
볻음은 단순한 교리가 아니었다. 지금 나 같은 사람을 위한 이야기였다.
무너지고, 실패하고, 숨조차 버거운 나를 위한 좋은소식이었다.
복음은 나를 고쳐주는 약이 아니었다.
복음은 나의 ‘호흡’이 되었다. 그게 없으면 나는 다시 죽음과 고립으로 갈 것 같다..
이제 나는 예수님을 닮으려 방향을 맞춰 한 걸음씩 걷고자 한다.
또 무너질 수 있다. 다시 우울할 수 있다.
하지만 이제는 혼자가 아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걷고 계신다.
나는 살기로 했다.
내가 나를 무너뜨리는 방식을 멈추기로, 하나님께 다시 나아가기로.
아이를 향한 미안함도, 사람들에게 말하지 못했던 슬픔도 이제는 예수님의 손에 맡기기로 했다.
그 모든 것을 맡기고 하나님이 맡기신 내 자리를 묵묵히 감당하려 한다.
복음은
내가 다시 하루씩 걸을 수 있게 해주는 가장 따뜻한 길이다.
그 길 위에서 나는 다시 울고, 다시 고백하고, 다시 웃게 되는 훈련을 반복하며
예수님을 닮아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