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나눔을 하기 전의 나의 모습은 불안하고, 두려우며 인정받고자 노력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늘 긴장되어 있었고, 늘 계획하며 불안을 잠재우고, 내 인생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하여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며 생산적이지 않은 일상의 일들을 터부시하였고,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기준과 원칙을 쫓아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성적이지 않아서 부모님이 사기를 당하였다고 생각했기에 나는 이성적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가난하고 불행했던 나의 유년시절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나는 매 순간 내게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며 책임감있게 살아가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렇게 제 스스로를 채찍질하고, 미래를 설계하고 계획하며, 저에겐 진정한 쉼이 없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미래는 늘 저에게 근심과 염려였으며, 제 스스로를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다는 열등감으로 인해 저의 내면은 늘 아파했고, 실제로 몸에 아픔으로 나타났습니다. 대학생 때와 회사에서는 위가 안 좋아서 약을 달고 살았고, 대학원생이 되어서는 치통이 심해져 갔습니다. 복음나눔을 하자고 하셨을 때, 저는 꿈꾸는교회 구성원이 되려면 해야 하는 절차라고 생각했고,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큰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복음나눔을 하며 새롭게 깨닫게 된 것이 많아 놀랐습니다. 가장 놀라운 것은 저에게 복음은 ‘복음’ 즉 ‘good news’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돌아가셨다는 그 사실이 저에겐 놀랍게도 부담스러운 소식이었던 것입니다. 저에겐 저의 인생을 책임지는 사람, 저의 인생을 이끄는 사람이 제 자신이었습니다. 세상은 ‘너의 인생을 멋있게 가꾸어가!’라고 하며 저의 생각을 지지해줬고, 사단은 ‘너의 어린시절을 봐, 하나님이 너를 사랑 하실 거 같니?’ 라며 저를 건드렸습니다. 그렇게 저는 하나님 없이, 저의 인생의 주인이 되고 싶었습니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며 최선을 다해 매 순간을 살다보면 내 삶을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을거야 라고 믿는 저의 가치관에는 하나님이 없었습니다. 하나님 없이 살고자 하는 저는 죄인이었습니다. 저는 내 스스로가 내 인생을 헤쳐나간다고 믿었지만, 저는 사실 계획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었고, 계획이 저를 움직였고, 불안이 원동력이 되어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 사실을 아는 것 자체만으로 제가 자유해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사실은 내가 불안을 원동력으로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었다는 것, 나의 인생을 내가 하나님 없이 이끌고 싶어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나의 죄성이라는 그 사실이 내가 그토록 고민하며 ‘노답’이라고 여긴 나의 습관들에 대하여 어두운 동굴 속에서 후레시가 비치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나에게 있어 복음은 이젠 부담감 있는 소식이 아닌 진정 좋은 소식입니다. 내가 내 스스로에게 공급하고 책임질 필요가 없다고, 긴장할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나에게 ‘내가 너를 쉬게하리라’ 라고 요한복음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내가 경험한 것보다 훨씬 크시고 놀라우신 분이었습니다. 나를 자녀 삼으시며, 세상을 누리라고 하는 분이셨습니다. 나의 계획을 뛰어 넘는 분이시고, 내 생각보다 더 큰 좋은 것을 주려고 하시며 나를 사랑하는 분이셨습니다. 내 안에 있는 깊은 열등감도 주님께서는 그분의 전략과 선하심으로 회복시켜 주실 놀라우신 분이십니다. 이전에 믿음의 대상은 ‘과거의 경험과 상처를 기반으로 하여, 나를 보호하고 생존하고자 하는 나’ 였던 것 같습니다. 복음나눔을 한 이후 나의 믿음의 대상은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제 복음 앞에서 복음을 즐거워하고, 기뻐합니다. 내가 더 이상 나의 인생을 책임지지 않아도 되며, 계획에 계획을 거듭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하나님은 선하게 나의 인생을 이끌어 가심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런 하나님의 자녀된 자리를 기뻐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긴장을 풀고 하나님의 자녀로 누리며 살아갈 것입니다.
|




